자리 양보가 사라진 시대 – 우리는 왜 모른 척하게 되었나?
출근길 지하철.
앞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서 있다.
나는 앉아 있고, 그분은 서 있다.
주변은 전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다.
‘다들 안 일어나네…’
‘내가 꼭 일어나야 하나…?’
‘나도 피곤하단 말이야…’
눈치만 주고받은 채, 열차는 다음 역을 향해 간다.

이 장면, 낯설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리 양보’는 점점 사라져 가는 행동 중 하나가 되었다.
왜일까?
우리는 정말 더 이기적인 존재가 된 걸까?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긴 걸까?
양보는 '의무'에서 '선택'이 되었다
과거에는 어르신이 타면 자리를 비키는 것이 당연했다.
어릴 적 부모님은 우리에게 “어른이 오면 자리 양보해야지”라고 교육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양보하지 않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어나면 이상한 눈빛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제 양보는 예의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강요받지 않으니, 안 해도 되는 분위기.
선택이 되었다는 건, 누군가 하겠지 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보하면 손해 본다’는 인식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바로 이거다.
양보하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직장인은 새벽같이 나와 겨우 앉았고,
학생은 하루 종일 학원 돌고 지쳐 있다.
그런데 내가 일어나야 한다니?
마치 내 피로는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자리를 뺏기는 느낌, 내 권리를 침해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자리 양보를 ‘내가 져주는 것’으로 만든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참는다’,
‘이건 나만 손해 보는 일’이 되는 순간,
양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른 척'의 기술은 점점 발전한다
요즘 사람들은 ‘모른 척’ 하는 데 아주 능숙하다.
이어폰을 꽂거나, 폰을 켜거나, 자는 척을 하거나.
눈 마주치지 않기, 시선 피하기, 고개 돌리기…
이 모든 행동은 사실 죄책감을 피하는 기술이다.
우리 모두, 사실은 안다.
눈앞에 서 있는 어르신이 힘들다는 것을.
내가 일어나면 편해질 거란 걸.
하지만 ‘내가 아니어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그 죄책감을 덜어준다.
모두가 책임을 나눠 가진 듯 보이지만,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요즘 어른’과 ‘요즘 젊은이’ 사이의 벽
세대 간 감정도 자리 양보를 어렵게 만든다.
한쪽은 말한다.
“요즘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
다른 쪽은 말한다.
“꼰대처럼 훈계할까 봐 일부러 피한다.”
예전엔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던 어르신들이
요즘엔 말끝마다 “우리 땐…”을 꺼낸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는 먼저 다가가는 걸 꺼린다.
혹시 자리 양보했다가 괜히 설교라도 들을까봐.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세운 채,
가까워질 기회를 잃고 있는 셈이다.
진짜 문제는 '무관심'
사실 자리 하나쯤 양보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관계’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자리를 양보하는 그 작은 행동 하나에
서로를 향한 배려와 관심이 담긴다.
그 관심이 쌓이면 사회는 더 따뜻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다들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예민하다.
서로 눈 마주치는 것조차 꺼리는 시대.
‘관심 끄고 사는 게 편하다’는 사회 분위기가
우리를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관심을 끊은 채 살아가는 게
더 큰 문제다.
다시 묻자, 양보는 왜 사라졌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가 너무 지쳐 있기 때문이다.
지친 하루, 사람들 사이에서 겨우 숨을 돌리는 순간,
그 앉은 자리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나만의 안식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안식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게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사회,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다.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어나는 그 한 번으로
하루가 따뜻해질 수도 있다.
“괜찮으시면 여기 앉으세요.”
이 짧은 말 한 마디가,
모른 척하던 사람들의 눈을 뜨이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도 누군가에게
자리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너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끔은 그냥 일어나자.
피곤해도, 억울해도,
그 자리가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
한 번쯤 양보해보자.
그것이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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