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스타 전자렌지, 우리 집 세월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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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스타 전자렌지, 우리 집 세월의 한 조각

주말을 맞아 아기를 데리고 엄마 집에 다녀왔다. 엄마는 고향 아파트에 여전히 살고 계신다. 오래된 단지지만 햇살이 잘 들고, 계절 따라 바뀌는 화단 풍경이 정겹다. 이번 방문은 아기와 친척들을 함께 만나는 자리였기에 더욱 특별했다. 첫 손주를 데리고 온 딸을 기다리던 엄마는 문을 열자마자 아기를 품에 안고는 “아이고 예뻐라~”를 연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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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부엌 쪽에 내려놓다 문득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낡고 투박한 디자인, 큼직한 다이얼과 희미해진 디지털 숫자. 바로 ‘골드스타’ 전자렌지였다. 지금은 LG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그 브랜드의 오래된 모델이다.
전면 유리에 박힌 ‘GoldStar’ 로고는 시간의 흔적처럼 빛바래 있었고, 전자렌지 문 안쪽에는 사용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전자렌지가 아직도 현역이라는 사실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시골 외갓집을 정리하면서 이 전자렌지를 챙겨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살림은 나눠지거나 버려졌지만, 이 전자렌지만큼은 끝까지 가져오셨다.
“이거 버릴 수가 없더라. 우리 엄마가 제일 많이 쓰시던 거거든.”
엄마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엄마는 결혼 전 골드스타 본사에서 근무하셨던 분이다. 그 시절, 자부심으로 가득했던 그곳에서 배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신뢰,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이 전자렌지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아기 이유식을 준비하는데, 평소 우리 집에선 냉동 이유식을 1분 해동하고 1분 데워야 적당한 온도가 된다. 그런데 엄마 집 전자렌지에선 1분 해동 후 30초만 돌려도 너무 뜨거워진다.
‘이게 진짜 20년 넘은 전자렌지가 맞나?’
전기세 많이 먹을까 걱정되면서도, 성능만큼은 요즘 제품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 괜히 ‘옛날 물건이 오래 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아기를 중심으로 친척 어르신들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대화는 아기 이야기로 흘러간다. 고모는 아기 손을 잡고 “따뜻한 게 꼭 주먹밥 같다”며 웃으시고, 고모부는 “전자렌지도 옛날 게 훨씬 낫네, 세상에 아직도 돌아가네” 하신다.
그리고 어느새 고모와 고모부께서 조용히 봉투를 건네주신다.
“우리 첫 손주인데, 뭐라도 주고 싶어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마음이 뭉클했다. 엄마도 괜히 바쁘게 아기 밥을 챙기시는 척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엌 한쪽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전자렌지를 바라본다. 그 안엔 이유식 그릇이 데워지고 있지만, 사실은 시간이 데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쓰시던 전자렌지를 엄마가 물려받고, 이제는 내가 그 앞에서 아기 밥을 데운다. 세대를 이어가는 고리 속에서 이 오래된 기계는 여전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골드스타 전자렌지는 우리 가족의 작은 타임머신이다.
과거의 식탁, 엄마의 청춘, 할머니의 손길, 그리고 지금의 우리. 모두가 이 전자렌지 앞에서 만나고 있다. 하루하루는 흐르고 사람은 늙어가지만, 어떤 기억은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내 아이의 하루에도 스며든다.

나중에 이 전자렌지가 고장이 나고,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더라도, 아마 우리는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건 단지 오래된 기계가 아니라, 가족의 온기와 이야기를 간직한 ‘기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전자렌지에서 꺼낸 이유식을 아기에게 떠먹인다. 잘 데워진 한 숟가락을 받아먹는 아기의 따뜻한 표정은, 이 오래된 기계가 오늘도 우리에게 건네준 작은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