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5-14절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6장 5-14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떠나가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근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왜 유익일까요? 보혜사, 곧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1) 주님의 떠나심과 우리의 근심, 2) 보혜사 성령의 사역, 3) 진리의 성령이 주시는 인도와 확신, 4)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실천을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1. 주님의 떠나심과 우리의 근심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간다”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디로 가십니까?” 묻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6절이 말하듯 근심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과의 이별, 앞으로 닥칠 불확실성, 자신들의 연약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관계의 단절, 미래의 불안, 통제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질문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근심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그 근심을 넘어설 더 큰 유익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오시지 않는다.” 주님의 부재가 곧 성령의 임재를 위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구원의 완성 단계이며, 그 결과로 성령이 교회 가운데 오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상황의 호전에서 오지 않습니다. 성령의 임재에서 옵니다.
2. 보혜사 성령의 사역: 책망과 변호
예수님은 성령의 첫 사역을 “세상을 책망하심”이라 말씀하십니다(8절). ‘책망한다’는 말은 단순한 비난이 아닙니다.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진실을 납득케 하는 법정 용어입니다. 성령은 어둠 속에 가려진 우리의 실상을 조명하십니다. 세 가지 주제가 제시됩니다.
1) 죄에 대하여: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절). 성경이 말하는 죄의 핵심은 도덕적 과오의 나열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보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시작은 행실 개선이 아니라 예수께 돌아오는 믿음입니다.
2) 의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0절). 예수님의 승천은 그분의 의로우심이 하나님께 인정되었음을 증거합니다. 우리 의의 기준은 비교가 아닙니다. ‘그나마 나는 낫다’가 아닙니다. 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성령은 우리 눈을 돌려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복음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는 소식입니다.
3) 심판에 대하여: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1절).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가 꺾였습니다. 성령은 이미 내려진 판결을 우리 마음에 확증하십니다. 세상은 여전히 요란하고 악이 설치는 것처럼 보이나, 성령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미 승부는 났다.” 이 확신이 성도를 담대케 합니다.
3. 진리의 성령의 인도: 들은 것을 말하시고 장래 일을 알리시리라
주님은 성령을 “진리의 성령”이라 부르십니다(13절). 성령은 변덕이나 감정의 바람이 아닙니다. 성령은 스스로 말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교통 속에서 “들은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진리는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과 같은 길을 걷습니다. 말씀 밖의 신비, 말씀을 벗어난 계시는 성령의 사역과 다릅니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복음의 진리를 더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둘째, 삶의 자리에서 진리대로 선택하고 걸어가도록 적용과 지혜를 주십니다. 또한 성령은 “장래 일”을 알리신다 하셨습니다. 이는 점술처럼 미래 사건의 목록을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앞으로 겪게 될 박해와 시험 속에서도 복음의 길을 보여 주시고, 종말을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우리의 오늘을 위치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어제의 은혜에 안주하지도, 내일의 불안에 휘둘리지도 않습니다. 성령께서 오늘의 순종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4. 성령의 목적: 그리스도의 영광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14절). 성령의 표지는 무엇입니까? 은사, 체험, 열정도 귀하지만, 가장 분명한 표지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가’입니다. 성령은 자신의 쇼를 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늘 예수 그리스도를 비추십니다. 설교가 성령에 붙들릴 때, 우리는 설교자를 잊고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찬양이 성령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음악에만 감동하지 않고 구주께 무릎을 꿇습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프로그램보다 복음이, 성취보다 순종이, 이름보다 이름 위에 뛰어난 그 이름이 중심이 됩니다.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분의 의, 그분의 평안, 그분의 사명, 그분의 사랑을 마음 깊이 체험하게 하십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권면
첫째, 근심을 성령의 임재로 바꾸십시오. 문제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임재의 밀도를 높이십시오. 매일의 기도에서 이렇게 고백합시다. “보혜사 성령님, 내 마음의 변호자가 되어 주소서. 내 안의 숨은 불신앙을 비추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게 하시며, 이미 선포된 승리를 믿게 하소서.”
둘째, 말씀과 성령을 함께 사모하십시오. 성령은 들은 것을 말하십니다. 그러니 말씀을 펼치십시오. 묵상하고 암송하십시오.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말씀을 나누십시오. 설교를 듣고, 소그룹에서 나누며, 삶에서 실천할 때 성령은 그 말씀을 ‘살아 있는 검’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말씀 없는 열심은 쉽게 뜨거워졌다 식어버리고, 말씀 없는 체험은 방향을 잃습니다. 반대로 말씀과 성령이 만날 때, 진리는 삶을 덮고, 평안은 마음을 지키며, 순종은 발걸음이 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삶의 목표로 삼으십시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의 목적이 주님의 영광이라면, 우리의 계획과 선택도 그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의 정직, 가정에서의 사랑, 교회에서의 섬김, 연약한 이웃을 향한 자비—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더 빛나게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재정비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결국 예수 중심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결론: 유익한 떠나심, 영원한 임재
주님은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은 죄·의·심판에 대해 우리의 눈을 열어 참회와 믿음으로 이끌고,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장래의 소망으로 오늘을 견디게 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근심의 문 앞에서 멈추지 말고 성령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말씀을 펴고, 마음을 열고,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으십시오. 그러면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의 길을 밝히시고,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기도
보혜사 성령님, 우리의 숨은 불신앙을 비추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게 하소서. 이미 심판받은 악의 권세 앞에서 담대케 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장래의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과 일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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