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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2다279795 판결 – 집주인의 실거주 말, 믿을 수 있을까?

날아라쥐도리 2025. 7. 2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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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22다279795 판결 – 집주인의 실거주 말, 믿을 수 있을까?


서울의 한 아파트. 세입자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이제 우리가 이 집에 직접 들어와 살 거예요. 계약은 연장하지 않겠습니다.”라는 통보를 받는다. 놀란 세입자는 계약을 갱신하겠다고 요구하지만,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거절한다. 결국 이 일은 법정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은 2022다279795 판결로,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한 집주인의 '실거주'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를 대법원이 꼼꼼하게 따진 사례다.


2020년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세입자에게는 한 번의 계약갱신요구권이 생겼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세입자는 기존 조건으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예외가 있다. 바로 집주인이나 직계 가족이 실제로 그 집에 거주하려는 경우다. 이 경우엔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집주인의 실거주 의사가 진짜였는가’다.


사건의 경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세입자는 2019년 3월부터 보증금 6억 3,000만 원에 2년간 아파트를 임차했다. 계약이 끝나갈 무렵인 2020년 말, 집주인은 “직접 거주할 예정이니 계약을 갱신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세입자는 곧바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이를 거절했고, 양측은 법정에서 다투게 된다.

문제는 집주인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나와 가족이 살겠다”고 했지만, 소장에서는 “부모님이 들어올 것”이라고 했고, 그다음 서면에서는 “배우자가 거주할 것이다”라고 바뀐다. 실제로는 배우자가 이미 인근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그 집을 처분할 계획도 없었다. 부모님이 이사 올 것이라는 주장도 병원 진료 목적이라 했지만, 1년에 몇 차례 통원진료를 받은 기록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인테리어 견적서도 있었지만, 실제 거주를 위한 준비라고 보기엔 어딘가 어색한 점들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했을까?


대법원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단순히 “살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이사할 준비가 있었는지, 기존 주거지를 처분하려 했는지, 왜 이 집에 들어와 살아야 했는지 등의 구체적인 정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임대인의 말이 시점마다 바뀌고,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봤다. 처음엔 본인이, 그다음엔 배우자, 그다음엔 부모님… 누가 살지 명확하지 않았다면, 그 실거주 의사는 신빙성을 잃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점 하나.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계약이 끝나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집주인의 말을 믿고 다른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런데 집주인의 말이 나중에 뒤집히면 세입자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법은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정당한 신뢰’를 무시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사건을 환송했다. 핵심은 이거다.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하려면,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진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말로만 “살 겁니다”는 안 된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갈등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다. 임차인은 주거 안정을 원하고, 임대인은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법이 요구하는 건 ‘신의’와 ‘진정성’이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기억할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절하려면 실거주 의사를 입증할 책임이 있다.
둘째, 단순한 말이나 서류보다 실제 행동과 정황이 중요하다.
셋째, 세입자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정당한 신뢰가 무너졌을 경우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계약이란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 이번 판례는 그 약속이 얼마나 무겁고, 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당신이 집을 빌리든, 빌려주든.
“진짜 살 거예요?”라는 질문엔 언제나 준비된 답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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