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모르는 이웃들 –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의 풍경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웃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게 되었을까?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이름을 모르고, 하루 종일 집 앞에서 마주쳐도 그냥 지나친다.
그뿐만이 아니다.
버스 안에서도, 골목길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사람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 서로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무관심은 이상할 정도로 한 방향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 복지, 치안, 질서, 환경까지
한 동네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일관된 단절과 해체가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해주는 사회학 이론이 있다.
바로 ‘탈구축된 공동체(Disorganized Communities)’ 이론이다.
공동체가 탈구축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 이론은 원래 도시 범죄 연구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더 넓은 의미에서 사용된다.
기본 전제는 간단하다.
어떤 지역은 공동체 기능이 약해지면서 문제 해결 능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공동체 기능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마을이나 동네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다.
예를 들면, 동네 아이가 사고를 쳤을 때 이웃 어른이 타이르고,
쓰레기가 쌓이면 주민이 알아서 정리하고,
누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연스럽게 도움의 손길이 가는 것.
이런 게 건강한 공동체가 가진 힘이다.
하지만 이 기능이 무너지면,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작은 일도 방치되고, 불편함이 쌓이고, 갈등은 피로감으로 남는다.
결국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고,
서로 돕기보다는 ‘내 일 아니면 신경 쓰지 말자’는 태도로 바뀌게 된다.
왜 공동체는 무너지는 걸까?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경제적 불평등, 인구 이동, 임대주택 비율 증가, 주민 간 신뢰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관계의 부재가 핵심이다.
요즘은 한 동네에 오래 사는 사람이 드물다.
이사도 잦고, 직장도 바뀌고, 아이 학교도 옮기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없다.
아파트 단지나 골목길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던 관계가 사라지면서,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굳어진다.
게다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이웃이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점점 더 고립시킨다.
그 결과, 작은 문제도 시민의 문제가 아닌 행정의 문제로 넘겨지며
모든 책임이 시스템에만 쏠린다.
하지만 시스템은 항상 빠르지 않다.
그 사이 누적된 불편은 결국 지역 전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무너진 공동체가 만드는 현실
공동체가 탈구축되면, 다양한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다.
동네 어른들의 눈이 사라지면, 공공장소에서의 규범도 약해진다.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더라도,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둘째, 질서가 약해진다.
불법 주차, 쓰레기 투기, 담배 연기, 소음 문제 등
모두가 불편해도 누구 하나 정리하지 않는다.
셋째, 고립이 심화된다.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 세대는 그들대로 따로 고립된다.
대화가 사라지고, 정서적 단절이 일상화된다.
이 모든 문제는 누가 잘못했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살지 않게 된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
다시 연결을 회복하려면
물론, 예전처럼 모두가 집 열쇠를 맡기고, 저녁마다 골목에 모여앉아 이야기하는 시대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여전히 필요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우리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거창한 운동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회복부터다.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 한 번,
분리수거장 정리하다 마주친 이웃에게 수고 많으셨다는 말 한마디.
작은 연결이 쌓여야 큰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또한, 동네에서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소모임이나 커뮤니티 공간,
아이들을 위한 작은 안전지킴이 프로그램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공동체가 기능을 회복하려면, 제도보다 사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맺으며
공동체가 무너진 사회는 결국 나도 보호받을 수 없는 사회다.
이웃의 무관심은 곧 나의 외로움으로 돌아온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시대에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먼저 다가가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사는 동네에는,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나요?
그리고, 언제 마지막으로 이웃에게 말을 걸어보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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