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교육학

무너진 일상의 단서들 – 브로큰 윈도우 이론으로 본 동네

날아라쥐도리 2025. 6. 1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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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일상의 단서들 – 브로큰 윈도우 이론으로 본 동네


나는 종종 버스를 타고 도시 외곽의 낡은 동네를 지나간다.
창밖을 보면 깨진 벽, 쓰레기 더미, 누군가 긁은 낙서, 정류장에 남겨진 캔과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거리엔 늘 표정 없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누구 하나 인사를 건네지도 않고,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런 풍경을 지켜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 동네는 이토록 무너져 있는 걸까?
그리고, 이런 환경이 사람들 행동에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을 설명해주는 사회학 이론이 있다. 바로 브로큰 윈도우 이론이다.

브로큰 윈도우 이론이란 무엇일까?


이 이론은 1982년,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라는 범죄학자가 발표한 개념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건물에 창문 하나가 깨졌는데, 그걸 방치하면 다른 창문도 곧 깨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작은 무질서나 방치된 흔적을 보면 이곳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런 인식은 더 큰 무질서, 나아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쓰레기 하나가 길에 버려져 있다.
그걸 아무도 치우지 않으면, 그 옆에 또 다른 쓰레기가 놓인다.
사람들은 여긴 버려도 되는 곳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렇게 거리는 금세 엉망이 된다.
무너진 일상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질서를 흔들어놓는다.

가난한 동네, 무질서가 더 쉽게 퍼지는 이유


가난한 동네일수록 이런 깨진 창문들이 많다.
관리되지 않는 골목, 페인트가 벗겨진 벽, 담벼락에 낙서, 빗물 고인 배수구, 남겨진 자전거, 꺼진 가로등.
그 누구도 정리하지 않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무뎌진다.
나도 굳이 신경 쓸 필요 없겠다는 마음이 쌓여간다.

이건 단순히 예절의 문제가 아니다.
무질서한 환경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구조적 결과다.

사람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누군가 먼저 무관심해진 자리에선 다른 사람도 차츰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다.

이기적인 행동, 그 이면의 풍경


버스에서 먼저 내리려 밀치는 사람,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
분리수거장에서 필요한 것만 챙기고 정리는 하지 않는 사람.

이런 모습들을 보면 우리는 흔히 왜 저렇게 이기적이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기심의 배경에는 이미 깨져버린 창문들이 쌓여 있는 현실이 있다.

환경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의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
여긴 원래 이런 곳이야라는 체념은 쉽게 퍼지고,
그 안에서 배려나 규범은 설 자리를 잃는다.

브로큰 윈도우 이론의 두 얼굴


이 이론은 실제로 여러 도시에서 치안 강화 정책에 활용되었다.
1990년대 뉴욕시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경범죄 단속을 강화했고, 실제로 범죄율이 감소했다는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때때로 위험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무질서한 환경에 사는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로큰 윈도우 이론을 적용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환경을 바꾸기 위한 정책과 인식의 균형이다.

즉, 사람을 탓하기 전에, 그 사람이 서 있는 배경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

희망은 작은 정돈에서부터

깨진 창문 하나를 고치는 것,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는 것,
낙서를 지우고, 화단을 정리하고, 가로등을 켜는 일.
이 모든 것이 단지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는 서로를 신경 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행위다.

내가 사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보호받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는 순간,
사람은 조금 더 조심하고, 배려하고, 관계를 맺게 된다.

작은 질서가 쌓이면, 큰 변화가 온다.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 사람이 치워진 거리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 것,
한 사람이 환하게 켜진 골목을 지나며 안심하는 것,
그 작은 경험들이 사회 전체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마무리하며


브로큰 윈도우 이론은 단지 범죄 예방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얼마나 신경 써지는 곳인지,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깨진 창문을 고치는 일은 사람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사는 동네엔 지금 몇 개의 창문이 깨져 있나요?
그리고, 그 창문을 그냥 두고 지나치진 않았나요?
작은 행동 하나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씨앗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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