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교육학

손에 든 표지물, 착용일까? 대법원 판단이 알려준 ‘작은 차이’의 무게

날아라쥐도리 2025. 8. 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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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든 표지물, 착용일까? 대법원 판단이 알려준 ‘작은 차이’의 무게

서론

선거철이 되면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홍보 방법을 볼 수 있다. 특히 예비후보자들은 선거기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을 알리려 애쓴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에서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의 의미를 둘러싼 흥미로운 판결이 나왔다. 부산의 한 구청장 예비후보자가 표지물을 손에 들고 지지를 호소했다가, 법 위반으로 유죄를 확정받은 사건이다. 얼핏 보기엔 사소해 보이는 이 행위가 왜 문제였을까?

사건의 시작

이 사건의 주인공은 구청장 예비후보자였다. 그는 선거구 내 길거리에서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이름과 홍보 문구가 적힌 직사각형 표지물을 양손에 들고 머리 위로 높이 올려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때는 아직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이었다. 예비후보자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공직선거법에서 허용하는 방법만 사용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다. 그런데 그는 표지물을 몸에 부착하지 않고 손에만 들고 있었던 것. 선관위와 검찰은 이를 법 위반이라고 보고 기소했다.

법 조항과 쟁점

공직선거법 제60조의3 제1항 제5호는 예비후보자가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표지물을 착용하는 행위’를 명시한다. 여기서 착용이란 사전적으로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거나, 신발을 신는 것처럼 신체에 부착하거나 고정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표지물을 몸에 붙이거나 어깨띠처럼 착용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손에만 들고 있는 것은 ‘착용’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조항은 원래 금지된 사전선거운동의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원은 그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입법 배경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입법 취지도 상세히 짚었다. 2010년 법 개정 때 후보자의 경우 ‘붙이거나 지니는 행위’까지 허용 범위를 넓혔지만, 예비후보자에 대해서는 ‘착용’만 허용했다. 이는 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 기간이 길기 때문에 너무 다양한 방식의 홍보를 허용하면 선거가 조기에 과열되고 사회적 비용이 커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과거 법 조문에는 ‘휴대’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삭제된 점도 지적됐다. 입법자는 ‘휴대’나 ‘지니기’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사건 경과와 재판 결과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피고인의 행위를 ‘표지물 착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손에 들고 머리 위로 올린 것은 신체에 부착하거나 고정한 것이 아니므로 법이 허용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표지물을 신체에 부착하거나 고정하는 경우만 착용에 해당하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착용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판례의 의미

이번 판결은 선거운동 방법에 있어 작은 차이도 법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예비후보자 입장에서는 손에 들든, 어깨에 메든 홍보 효과가 비슷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다르게 취급된다. 특히 사전선거운동은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에, 예외 조항의 해석을 넓히려는 시도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선거운동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법 조문과 판례를 숙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다.

마무리

결국 이번 사건은 ‘손에 들었느냐, 몸에 붙였느냐’의 차이가 유죄와 무죄를 갈랐다. 대법원은 입법자의 의도와 법 해석의 일관성을 이유로, 착용의 범위를 넓히지 않았다. 선거는 공정성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 과정이고, 작은 규정 하나에도 그 취지가 담겨 있다. 이번 판례는 앞으로 예비후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알릴지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법이라는 건 참 세밀하고, 때로는 냉정하다. 그러나 이런 엄격함이 있어야 선거가 과열되지 않고, 모든 후보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표지물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제도적 고민이 깊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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