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수학관련

피타고라스의 생애와 일화

날아라쥐도리 2023. 9.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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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생애와 일화

 

피타고라스의 생애

 

피타고라스(Πυθαγόρας: 기원전 569?~497?)는 기원전 6세기 약 582년경에 에게해의 사모스 섬에서 출생한 그리스의 수학자이다. 상인 므네사르코스는 '아폴론의 대변자'라는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피타고라스'라고 지었으며, 아들이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고 전해진다.

 

사모스에서 이오니아철학을 공부한 피타고라스는 같이 정치개혁에 참여한 친구 폴리크라테스가 독재가 되자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주선으로 이집트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이후 페르시아의 이집트 침공으로 인해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접한 피타고라스는 중앙아시아와 인도까지 다녀왔다고 전해지며 당시의 모든 학문을 접했다고 한다.

 

56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는 철학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그 공동체와 함께 수학, 철학, 자연과학을 연구하고 이때의 공동체 업적은 이후 많은 수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 공동체가 바로 피타고라스학파라고 불리는 학파이다. 그리고 그 학파가 연구한 내용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빗변을 제외한 나머지 두 변의 값을 직각삼각형에서 더한 값은 = 빗변의 제곱이다' 라고 공식을 정리한 피타고라스 정리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일화

 

피타고라스의 컵

전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지 않도록 특별한 컵을 발명했다고 한다. 컵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액체가 담기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이를 통해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당한 양을 섭취하도록 유도했다고 한다.

 

채식주의

피타고라스는 채식주의를 권장하고 실천하면서도 콩은 절대 먹지 말라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단순히 콩을 싫어해서, 또는 피타고라스가 콩 알레르기를 앓고 있어서 등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무리수 발견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2의 제곱근과 같은 일부 숫자는 두 정수의 비율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무리수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수학에 대한 이해의 중요한 발전이었다.

 

피타고라스 정리

두 직각변에 얹힌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빗변에 얹힌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정리로, 기하학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문화어: 세 평방의 정리, 영어: Pythagorean theorem, Pythagoras' theorem)는 직각 삼각형의 빗변을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는 두 직각변을 각각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 넓이의 합과 같다는 정리이다.

 

히파소스 암살

히파소스(Hippasos)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회원 중 한 사람으로, 무리수 $\sqrt 2$를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다. 그는 스승의 이름이 붙은 정리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두 변의 길이가 1인 직각삼각형에 적용하여 $\sqrt2$ 라는 숫자를 발견하였고, 완전한 정수비로 표현할 수 없는 숫자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당시 피타고라스학파는 만물의 근원은 정수라고 생각하고 모든 수는 정수의 비로 표현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히파소스가 발견한 무리수는 그때까지 세상에 알려진 피타고라스학파가 주장한 세계관의 불합리성과 오류를 의미했다. 또한 그는 학파 내에서만 공유되는 수학 정리들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몇 가지 저작을 내기도 했다. 히파소스의 이러한 행위들은 그때까지 정해져 있던 규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무리들은 이러한 새로운 생각과 행동들을 그대로 둘 경우 자신들의 단체가 위험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그를 이단으로 몰아 단죄하고 소리 없이 암살되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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