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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생애와 업적

날아라쥐도리 2023. 10. 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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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의 생애와 업적

피타고라스의 생애

피타고라스는 이오니아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탈레스의 권고를 따라 수학의 시야를 넓히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유학한 뒤, 고향에 돌아와 종교색이 짙은 학교를 세웠다.. 때마침 사모스에는 포리크라데스가 학정을 실시하여 자유가 없었으므로 그리스의 식민지인 남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서 타렌트로 이어서 크로톤으로 옮겨가며 학교를 창설하여 명성을 떨쳤다.

 

운 좋게도 피타고라스는 그곳에서 상대 최고 부자이자 역사상 가장 힘이 좋았다는 밀로의 후원을 받고, 밀로가 살고 있는 근처에 자신의 소유로 되어 있는 건물 한 곳을 내주었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 학회이다.

 

이 학교에는 학문에 뜻을 두고 진리를 갈구하는 많은 학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그 수는 300을 넘었으며, 그 당시 공개 석상에 나오지 못하게 되어 있던 여자들까지도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여자라 하면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고 자신의 발언권도 가지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몇몇의 여자 제자 가운데 피타고라스의 결혼녀가 있었다. 바로 밀로의 딸 태아노였다. 이들은 많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였으며 테아노는 역사상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여자 수학자로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학생들을 피타로가스 학도라는 정식 학생과 청강생으로 나누었고, 그리스인 중 가장 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자라는 존칭을 받은 피타고라스는 흰 가운에 별 모양의 오각형 무늬를 새긴 황금관을 쓰고 교단에 섰다고 한다. 그리고 학도들은 배운 내용에 관해서는 일체 비밀을 지켰으며 특히 정식 학도들은 간소한 생활, 엄격한 교리, 극기, 절제, 순결, 순종의 미덕증진을 목적으로 단체 행동을 하였다.

 

이들은 피타고라스의 수업을 완전히 이해했을 뿐 아니라 나름대로 새로운 정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이 학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신을 학회에 헌납했다. 하지만 학회를 탈퇴할 시에는 자신의 재산에 2배를 가지고 나왔다. 또한 탈퇴한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념비도 세워 주었다고 한다.

 

영혼 불멸을 논하는 일종의 종교 단체로서 의식을 거행하고, 그 제자들의 발견은 모두 피타고라스의 것으로 하며, 그 발견을 외부에 누설하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이 교단은 세력을 갖게 되었고, 각 방면에서 선망의 대상에 됨과 동시에 질시의 표적이 되어 정치적 반대파로부터 불의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피타고라스당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부녀자들을 배에 태워 시실리 방면으로 미리 피난시키고 피타고라스를 호위하면서 메소포타이마 쪽으로 도망을 갔으나 추격은 심해지며 따르는 문하생도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 결국 메타폰톰에서 피타고라스는 체포되어 살해되고 말았다.

 

이때 피타고라스의 학교는 불태워졌으며, 그의 학파는 그리스의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약 200년간 활동하였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원리를 수에 두고, 세계를 수적 관계 또는 비례에 기초를 둔 음악적인 일대 조화로 보았다. 그리고 수에서의 조화의 관계에서 영혼의 정화를 인생의 최대 목적으로 삼았고, 오르페우스교적 신비주의에 의하여 영혼의 불멸과 윤회를 믿고 엄격한 금용생활을 하였다.

 

당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수학에서는 직각삼각형에 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유명하며, 천문학에서는 천동설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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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타고라스 학파의 업적

 

정수론.

피타고라스는 자연계에서의 수의 역학을 중요시하여 만물은 수이다.라 하고, 계산 기술이 아닌 수 자체의 성질을 연구하는 정수론을 연구했다. 그는 자연수의 정실 중 간단한 것, 아름다운 것, 조화가 잡힌 것이라 생각되는 것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홀수, 짝수, 소수, 서로소, 과잉수, 완전수, 부족수, 친화수 등이 있다.

 

기하학.

피타고라스의 이름을 따서 붙인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낀 두 변으로 이루어진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빗변을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넓이와 같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가 인도에 깔려 있는 돌을 보고 직각삼각형의 직각을 끼는 두 변위에 그린 정사각형 안에 있는 돌의 개수의 합은 빗변 위에 그린 정사각형 안에 있는 돌의 개수의 합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직각삼각형까지 확장하여 성립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추측이 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황금 분할의 작도법을 발견하였고, 정12면체인 정 5 각형의 대각선은 서로 다른 변을 황금분할 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정 5 각형의 작도법도 발견하였다.

 

무리수.

히파수스는 $\sqrt{2}$를 발견하고 증명하였다.

히파수스의 증명이 있기 전까지 모든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정수와 정수의 비로 모든 기하학적인 대상을 표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다른 수의 존재의 필요성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히파수스가 정사각형의 대각선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사른 수도 존재하지 않음을 보이자 그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각선의 길이를 근사적으로 나타내려 하였지만 실제로 그들은 $\sqrt{2}$는 수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음악가 피타고라스

아름다운 선율을 자랑하는 음악과 딱딱한 수학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수학자는 음악의 역사 첫 장부터 등장하며 수학 없이는 음악 이론을 전개할 수 없다.

 

수는 만물을 지배한다고 주장했던 피타고라스는 음정이 수의 지배를 받는 사실을 발견했다. 피타고라스는 장력과 재질이 서로 같은 두 현을 퉁겼을 때 나오는 두 음은 길이의 비가 2:1이면 8, 3:2이면 5, 4:3이면 4도 음정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현의 길이가 이렇게 간단한 정수의 비로 표현될수록 어울리는 소리가 나고, 복잡할수록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렇게 피타고라스의 음정 이론은 서양 음악 이론의 출발점이 되면서 음악과 수학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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